성 어거스틴은 역사의 내용을 ‘투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투쟁은 선과 악, 진리와 이에 대적하는 거짓된 이념들, 믿음과 불신의 대결입니다.
아널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도 이 역사의 종국에는 두 종류의 인간만이 남을 것인데 그것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와 철저한 신념의 기독교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갈등과 대립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개인의 삶 속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인간의 삶이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고 의로움과 사랑과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의 삶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한 인간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더 존귀하게 생각하므로, 인간을 소유적 존재, 실용적 도구, 조직의 틀로 보려는 그 어떤 것도 과감히 배격하고, 진리와 영으로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과 자기희생의 능력만이 인간을 탐욕과 위선과 무절제와 정욕의 굴레에서 자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삶은 물을 떠난 고기, 뿌리 없는 나무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인은 세상의 빛 그리고 소금의 존재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독인은 이 시대를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언자입니다.
이 부르심과 선택에 대한 자각과 응답 그리고 결단이 우리에게 요청 됩니다. 그것은 진정 새로운 역사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세우는 성업에의 초청입니다.
“너희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성서는 적극적인 삶으로 우리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두 가지 살아있는 교훈을 얻습니다. 그 하나는 월남의 공산화이고 다른 하나는 쿠바의 공산화입니다.
월남이 공산화된 후 그 땅의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자유를 찾아 탈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람들, 그것은 진정 월남의 비극만이 아니요 역사와 인류의 비극인 것입니다. 저들은 바다 위를 방황하다가 끝내는 어린이와 함께 수장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이상의 잔인한 사형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신문 기사 중 전후 월남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라기보다 가난과 무지와 질병을 퇴치할 의사와 지식엘리트의 부족에 있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지식인이 국외로 탈출하였고, 100%에 가까운 의사들이 나갔기 때문에 진료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건은 쿠바의 이야기입니다.
그 나라가 공산화되기 전 그 나라에는 교회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 등 자유 세계로 유학을 가는 지식인과, 이와 달리 공산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소련 등 공산권으로 유학을 가는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저들이 귀국하여 사회 속에서 일하는 모습이 서로 달랐다고 합니다.
전자는 주로 국민의 삶이나 생각과는 거리가 먼 관료가 되어 종국에는 그들의 신앙과 함께 그들의 존재가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고, 후자는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농촌, 광산, 공장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현대 문화의 화려한 꽃만 보고 그 깊은 뿌리와 정신을 접하지 못하면 그 꽃과 함께 시들어 버리는 운명에 처하나, 후자의 젊은이들 같이 희망을 갖고 살 때 그 나라는 소위 제 3세계에 혁명을 수출하는 집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과연 대학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으며 또 교회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국민의 삶과 격리된 사회, 정치, 문화 그리고 종교의 엘리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며 믿음의 형제로 느끼는 새로운 바람, 사랑의 혁명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을 남발하여 인간을 경제적 축복의 동물로 전락시키는 신앙과 교육, 그러한 삶을 극복하고 저 십자가의 고난, 골고다의 그 숭고한 사랑을 외치며 실천하는 삶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부활의 새 아침, 사랑의 새 역사는 이뤄질 것입니다.
박물관이나 진열장의 유품 속에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역사 진리의 세계를 창조하려는 일에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던질 때 진정 새 역사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결단이 요청됩니다
[영감의 숨결] 사랑의 종교
청아 서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