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이화여자 대학교 하계 수련장인 비인(庇仁) 캠프장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서천에서 동백정 가는 덜컹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면 작은 언덕 넘어 우편으로 짙푸른 솔나무 숲이 드리워 있고 그 사이로 은빛 빛나는 모래 언덕 위에 캠프의 자태가 나타납니다. 외부 사람은 없고 이화의 식구들이 주로 사용하는 이 캠프장은 바다를 동경하고 꿈꾸던 나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고향이 되었습니다.
너무도 고요하고 아름다운 바다, 좌우로 뻗어나간 산허리가 바다 가운데로 빠져 바람을 막아주고, 뒤로는 울창한 숲이 병풍을 친 듯 서있고, 바다에 이르는 오솔길에는 이름모를 많은 꽃들이 바람결에 따라 춤추는 꿈의 세계, 그곳은 진정 사랑하는 아가를 포옹하고 있는 어머니의 품이었습니다.
바다가 해를 삼켜 버리면 숲에는 파도소리, 벌레 소리가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루고 캠프에서는 둘씩, 셋씩 모여 앉아 인생을 노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경건으로 충만한 땅, 파도 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을 기도로 지새우는 기쁨 또한 넘치는 그곳은 진정 거룩한 세상이었습니다.
나는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또 하나의 음성이 들려옴을 깨달았습니다.
바다는 살아서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신 예수님 같이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보내고 또 일정한 간격으로 찾아와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애무하며 세파에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씻어주고 위로와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바다는 나의 어머니요 주님의 사랑이었고 파도는 나의 친구였습니다. 그 넘치는 사랑, 그 놀랍고 풍성한 은혜는 변함없이 우리를 감싸고 있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 사랑을 배반하는 이기적 삶에 빠져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곧 영적 무지의 소치였습니다. 그리고 바다는 낮이나 밤이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맑고 푸른 마음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습니다. 좋을 땐 어쩔 줄 모르고, 슬픔을 자제할 줄 모르는 인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야박한 인간을 향해 파도는 언제나 변함없는 영원의 모습으로 엄습해 왔습니다. 그 파도 속에 맑아지는 양심의 세례가 있습니다.
끝으로 파도는 정방향으로 서있는 사람에게는 파도를 타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만 파도를 향해 옆으로 선다거나 반대 방향으로 서 있으면 여지없이 후려쳐서 삼켜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을 향해 오늘도 세상의 시험과 유혹은 성난 파도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몰려오고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그 말씀을 붙들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해 올바르게 서 있을 때 우리는 세파로부터 승리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좌로나 우로나 기웃거리며 방황할 때 세상은 우리의 삶을 삼켜버리고 악마의 도구로 생명을 빼앗아 갑니다. 파도 속에서 들려오는 세미한 주의 음성을 들으며 나는 오늘도 오라고 손짓하는 비인의 파도를 잊지 못해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영감의 숨결] 사랑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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