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을 파괴하는 것


나의 고향에는 옥정천川이라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강은 광덕산과 설화산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청옥과 수정의 찬란한 빛을 발하며 언제나 풍성하게 넘쳐흐르는 기름진 생명의 젖줄이었습니다. 매끄러운 수면에 날치가 뛰어오르고 잉어 떼가 물살을 일으키며 도도한 행진을 하는 환희의 강,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뛰어들어 풍덩거리며 물장구치고 헤엄치던 강, 그곳은 잊을 수 없는 꿈의 강이었습니다. 나는 얼마 전 열망의 포로가 되어 이 강을 찾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20년 만에 찾는 그곳은 마치 전쟁의 폐허와 같이 온통 파괴되고 버려진 죽음의 세계였습니다. 석회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붉고 흰 석회 폐수와 도시에서 유입되는 오염된 물과 토사로 범벅이 된 죽음의 강, 버려진 세계, 생명이 떠난 죽음의 사체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가 주는 시련 이상의 다른 아픔을 또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상실의 아픔입니다. 과거 서울 대방동에는 불우한 여성들을 수용한 보호소라는 시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불우한 할머니들과 온갖 질병을 가진 여인들이 수백 여 명 수용되어 있습니다. 치매가 있어 집을 나온 분, 오랜 병고로 버려진 분들, 외출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분 등, 많은 이유로 그곳에 수용되어 나름대로의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추운 겨울밤 며느리에게 쫓겨나 육교 밑에 버려진 채로 있다가 온 몸에 동상이 걸려 다 죽게 된 모습으로 발견되어 수용된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부모가 병들었다고, 늙었다고 쫓아내고 또 집나간 부모를 찾지 않는 이 시대의 아들, 딸들. 그것은 진정 비정한 세대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린 생명을 낳기만 하고 버리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 유해 식품, 가짜 상품, 불량 상품을 만들어 팔면서도 돈만 벌면 된다는 사고방식,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파괴적 무리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불륜과 부도덕과 비정의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오늘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자연을 파괴하며, 정신에 흐르는 강의 생명의 젖줄을 차단하고 인간의 정신세계를 오염시키는 공해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인간의 영성과 삶을 말살하고 있습니까. 사회 경제학자 K. 보울딩은 20세기가 극복해야 할 네 가지 함정이 있는데 그것은 전쟁, 경제 발전에서 오는 문제, 인구 폭발, 그리고 엔트로피 현상이라 지적하였습니다. 또 미래학자들의 모임인 로마 클럽은 지구상의 자원이 그 한계점에 도달하였고 인류의 지혜와 상호협력의 노력이 증진되지 않으면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더 절박하게 다가오는 큰 문제는 인간의 외적인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 내부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심령을 병들게 하는 죄의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한계 상황 속에서 절규하는 인간의 상황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랴!’ 현대의 죄악은 하나님, 참 진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입니다. 파괴적 이기주의입니다. 진리의 자리에 하나님 대신에 인간 자신이 서게 되었고 여기에서 불신, 미움, 증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나옵니다. 이것이 이 세계를, 인간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공해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곳에 참된 구원이 있습니다. 그 길은 참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삶을 통해 그분과 연합하므로 우리는 정신적 존재, 인간의 본래적 존재에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진리를 알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내 말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진리이신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영감의 숨결] 실존을 파괴하는 것

청아 서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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