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저변에는 두려움의 신앙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 질서와 새로움과 소망을 심어주시는 강한 손길을 의식하며 그 보이지 않는 분에 대한 두려움, 짧은 생이긴 하나 그 생을 허락하신 뜻을 탐구하고 구현해 가는 삶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웃과의 만남 속에서 아름답고 참되고 선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정열 이 모든 것이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창조적 삶의 요소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중심에는 인간이 어떠한 처지와 환경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며 그 신앙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강한 윤리적 강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과 역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역사였습니다. 이 관계의 상실 그것이 곧 죄와 죽음이었고 생의 기저를 흔들어 놓는 두려움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온전하지 못한 인간이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또 본다는 것은 이스라엘 신앙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전능자이시고 역사의 섭리자이신 이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인간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여 인간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으며 소망의 손길을 펴시는 사랑의 주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호랩산의 떨기나무 불꽃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뵈옵고 심히 떨리는 심정으로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모든 허물과 인간적 아집이 벗겨지고 정결과 거듭남의 체험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언자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환상 속에서 보좌에 앉으신 주 하나님을 뵈옵고 두려움에 질려 ‘아 나는 죽게 되었도다’라고 외치며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광야의 시련을 딛고 마지막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막강한 무기와 힘을 자랑하는 여리고성의 위세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위급한 상황들 속에서 인간의 무기력을 초월하여 언제나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소망의 음성이 있었으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 나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느니라’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 신앙은 또한 이스라엘의 신앙의 놀라운 발견이오 승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로 이스라엘은 가장 약하고 무기력한 소수의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자기의 백성으로 택하시어 세상의 강한 자를 무기력하게 하였으며 홍해의 위험과 광야의 시련과 가나안 정복의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실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민족의 슬기와 지혜를 총동원하여 난국을 극복하는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의 발견입니다. 방자하고 무례하고 허위와 위선과 이기적 욕심으로 가득 찬 인간의 문화를 벗어버리고 잃어버린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과 나의 마음속에 있는 죄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다 쏟아놓고 모세와 이사야가 경험한 성결의 체험을 가져야겠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뜻, 역사의 순리에 모두의 뜻을 묶으려는 노력에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독인은 하나님 이외에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그분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는 한 진리는 승리하고 이미 세워진 역사의 방향은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만이 닫혀진 세계를 열고 무질서와 시대착오적 망상과 인간적 과오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영감의 숨결] 누구를 두려워 할 것인가
청아 서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