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의 교훈


날씨가 포근해 지더니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겨울비이지만 봄비 같은 따스함이 피부에 느껴집니다. 수많은 사람의 발길로 때가 묻고 얼룩져 더럽혀진 거리, 흙과 먼지와 눈이 범벅되어 질퍽한 채 깔려 있는 불결한 아스팔트 위로 겨울비가 오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음지의 빙판, 언덕의 눈 그리고 거리의 구석구석에 쌓인 오물까지 다 녹여 말끔히 씻어 내고 있습니다. 비가 그친 후 거리 모습은 막 이발을 한 소년과 같이 단정하고, 파도가 막 스쳐간 모래사장과 같이 깨끗하였습니다. 왠지 울적하고 답답하던 삶 속에 생기가 솟아오르며 오랜 체증이 떨어지는 가벼운 마음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실로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그 엄청난 일을 겨울비는 감당해 주었습니다.

이 비와 같은 귀한 삶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값지고 귀한 인생이라 생각해 봅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꽉 찬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거리에나 음식점에나 다방이나 술집이나 심지어는 병원에까지도 사람들은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수많은 인파에 파묻혀 길을 걷고 있는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연 살아 있어야만 하는 그런 존재란 말인가. 이 좁은 거리에 얼룩진 흔적을 남기며, 더럽고 냄새나는 공해의 존재로 살고 있는 내가 아닌가. 이런 질문은 한해를 보내는 감상이라기보다, 오늘날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 존재에 대한 의미의 확인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많지만 진짜 사람은 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공공기관이나, 회사나 학교, 어디에서나 나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세상사에 있어도 잔칫집에는 사람이 들끓지만 상갓집이나 양로원, 고아원에는 발길이 뜸합니다.

정치를 하여 나라를 위하겠다는 정당, 그리고 국가고시에는 수많은 엘리트들이 치열한 경쟁으로 응시를 하고 있지만 이름 없이 봉사를 해야 하고 또 자기희생이 있어야 하는 곳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 아닙니까!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셨으나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신 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사건입니다. 이 도성은 죄악으로 가득한 성으로서 유황불로 심판을 받은 비극의 도시였습니다. 이 심판의 뜻을 알아차린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향해 ‘이 성에 의인 50명이 있어도 멸하시렵니까?’라고 호소할 때 그 응답은 ‘의로운 사람 10명만 있어도 구원받을 것이다’였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참으로 의로운 존재, 진리의 사람이 요청됩니다. 겨울비와 같이 추하고 얼룩진 세상의 때를 말끔히 씻어주고, 이 사회 속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참신한 사람이 요청되고, 삶 속에 생명이 있으며 기쁨과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이 오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역사의 중심이시며 그 역사를 섭리하시는 주권자인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공의와 사랑의 구현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이 귀한 모습이 나와 당신의 삶 속에서 확인되기를 바랍니다. 어두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인류의 죄악과 질고를 대신 지고 인류를 해방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왕으로 오셨지만 세상을 섬기는 종이 되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자처하셨습니다. 바로 그 분이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타인을 위해 희망을 가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감의 숨결] 가을비의 교훈

청아 서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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