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이 책은 19세기 말 개화기에 기독교로 개종한 청년들이 목회자가 되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 3·1운동 주모자로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망명하다시피 해외 동포사회로 이주하여 이민 노동자로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 속에서 제2의 3·1독립정신을 복음으로 펼치는 진기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접해온 한국 초대교회사는 대개 19세기 대동강의 제너럴셔먼호나 만주의 존 로스, 맥킨타이어를 초기 접점으로 하여,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같은 교단 선교사들이 전개한 교육·의료 사업을 열거하고, 위기의 신사참배 또는 교단 정치사로 마무리 짓는 것이 교회사 개론의 전형이었다.
본서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루트를 통해, 서구의 선교 역사 입장에서의 한국교회사가 아니라 백 년 전을 살아 낸 우리 선조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차원 높은 역사 재구성을 하고 있다. 이는 우리 역사를 대하는 경건을 길러주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이 그런 역사적 필치로 쓰였음에도, 결코 역사 서술 범주에 머무르지 않는다는데 그 진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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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다년간 시스템 분석가로 재직한 경륜을 십분 발휘하여 충실하고도 집요한 사료 공략을 통해 자신 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입장들을 입증해나간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다면적 논제를 우리 앞에 던져 놓고 있다.
첫째, 기독교 토착화의 역류
선교는 분명 서구인 선교사의 몫이었지만, 분명하고도 확실한 독자적 한국 기독교를 구축할 수 있는 생명력이 역류하였다. 저자가 이 역류를 입증해나가고 있다.
둘째, 언어 토착화의 역류
미주 노동이민자들은 한글이 전혀 필요치 않은 후손들에게, 부모인 자신들도 읽고 쓸 줄 모르는 한글을 가르치려고 애썼다(그들은 적지 않은 수가 문맹이었다). 이 무모한 시도가 한국인이 세계인이 되는 역류의 중추신경이었음을 저자는 입증해나가고 있다.
셋째, 삶의 토착화 역류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는 세대가 아니었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 삶을 복종시키고 역류시켰다. 일당 70센트 노동자의 후손이 의사, 교수, 예능인이 되어가는 격동의 역류를 저자는 담담하고 냉정한 필치로 입증해나가고 있다.
이 세 가지 급류가 역류되어 흘러가는 것을 숨 가쁘게 읽는 동안, 그리고 읽기를 다 마쳤을 때 우리 마음의 중심부에는 ‘교회’의 본질이 들어차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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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글 /이 만열 교수
안형주 선생이 오랫동안 구상하고 있던 「천안만세운동과 미주민족운동」이 드디어 간행되었다. 먼저 이 책의 간행을 축하함과 동시에 연만하신 연세에도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집필에 공을 들인 저자 안형주 선생께 치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저자 안 선생은 이 책의 저술 동기를 부여한 죽사竹史 안창호安昌鎬 목사의 손자로서 오랫동안 그의 할아버지의 행적을 추적하고 미주에서의 한국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해 온 분이다. 그는 일찍부터 그의 할아버지가 활동했던 미주 민족운동에 눈 떠, 그 민족운동의 자료를 모으는 것이 시급한 사업이라 인식하고 이 일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자료수집을 위해 과거 민족운동에 참여한 분들이나 그 유족을 찾아 그들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나 그들의 경험을 녹취하는 일을 시작했다. 특히 민족운동에 앞장서고도 국가의 표창을 받지 못한 이들을 발굴하여 그들을 독립유공자로 표창 받도록 주선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공적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을 수집한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이뤄진 땀의 산물이다.
이 책은 먼저 기독교 특히 미국 감리회가 한국에 선교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 선교에 나선 외국의 선교부는 미국 남북감리회와 미국 남북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그리고 호주 장로회가 중심이었고 그 뒤에 다른 교단들도 내한했다. 한국에서는 이 여섯 교단이 합의하여 선교지역을 분할했다. 미국 감리회는 평안남북도,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일부와 충청남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충청남도 천안지역 중심의 미국 북감리회 선교를 소개하고 이 지역에서 많은 선각자들이 입신하여 훗날 천안과 그 인근 지역 독립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서술했다. 여기에 죽사 안창호 목사를 위시하여 정재관 목사, 현석칠 목사의 활동이 돋보이고, 아울러 유관순의 독립운동도 조명된다.
천안에서 3.1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안창호 목사는 그 뒤 하와이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안창호 목사는 하와이 한인촌 와히아와(Wahiawa) 지역에서 목회하는 한편 교민들과 함께 민족운동을 전개한다. 특히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의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결행하기까지는 하와이 교민들의 뒷받침이 컸다는 것을 언급한다. 이 점은 김구가 「백범일지」를 통해서 언급했지만, 저자는 현지의 자료조사를 통해 백범의 증언을 입증하려고 했다.
저자는 안창호 목사의 목회와 민족운동뿐만 아니라 하와이와 미주지역 교민과 교회의 민족운동 상황도 소개한다.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강영각의 활동과 황혜수의 형제클럽, 한석원 목사의 미주민족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자료는 미주지역 민족운동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과 활동을 확대시켜주는 기여를 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미주 민족운동의 전반적인 성과를 소개하면서, 미주지역의 민족운동이 중국과 연해주 등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어운동, 예술운동, 교육운동 등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런 운동이야말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토대이며, 이러한 바탕 위에서 독립운동도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교회를 통한 민족운동‘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다음 세 가지를 처음으로 밝힌다고 주장했다. 첫째, 1919년 6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미국 감리교 해외선교100주년 기념대회에서 한국 학생들이 별도로 3.1운동 진상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둘째, 1928년 6월 LA에서 개최된 제 10차 세계주일학교대회에서 한국 대표 28명이 푸른색 한반도기를 LA제일감리교회 벽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셋째, 한글학교에서 교육 받은 2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미국 주류사회에 전문인으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저자는 그런 사례들을 민족운동 차원에서 밝혔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은 아마도 일찍부터 자료 찾기와 인물 탐색에 나섰던 저자가 아니었으면 밝힐 수 없었던 것으로 이 책의 무게를 더해준다.
이 책은 저자가 거의 한 평생 동안 모은 자료들을 쏟아 넣고 녹여 기록한 내용들이다. 자료에는 문헌자료도 있지만 면담을 통해 녹취한 것도 있어서 그 노고를 일일이 매거할 수 없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많은 사진을 모아 기록과 녹취를 뒷받침했다. 따라서 이 책은 민족운동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발로 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 민족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미주 민족운동이 안형주 선생 같은 저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도저히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몇 마디 추천의 말을 쓴다. 한국 기독교 민족운동과 미주 민족운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2018년 2월 10일
이 만 열
■ 저자 안형주 소개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상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풀러턴에서 역사학 석사를 수료하였다.
로스앤젤레스 록히드항공사 시트템분석가로 근무하였으며, 캘리포니아주 오랜지 사회복지부 시스템분석가로 근무하고 은퇴했다.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아시아계미국인 연구소 내 한국계미국인 연구소 UCLA Asian American Studies Center, Korean American Studies 총무간사, 동대학 객원연구원 visiting scholar, 단국대학 한국민족학연구소 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보훈처 미국지역 사료조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틈틈이 모은 자료들을 UCLA Special Collection ‘Hyung-ju Ahn Collection’과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안형주 문고)에 기증하였다.
지은 책으로 영문 ≪Between Two Adversaries:Korean Interpreters at Japanese Alien Enemy Detention Center During World War II≫, ≪Faithful Witness: Centennial History of Los Angeles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Remembering Our Korean Brethren: Centennial History of Olive United Methoist Church≫가 있고,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재외동포재단 수상), ≪1902년, 조선인 하와이 이민선을 타다: 안재창의 가족 생애사로 본 아메리카 디아스포라≫(한국출판문화진흥원 수상)이 있다. 그 외 다수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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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글 /이 성수 박사
안형주 선생께서 많은 시간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책 「천안만세운동과 미주민족운동」이 3·1만세운동 백 주년을 앞두고 세상에 나온 것을 축하하면서, 큰 기쁨과 거룩한 설렘이 마음에 앞선다. 왜냐하면 이 책은 아무 데서나 접할 수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애국자라 여기지만 백 년 뒤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접해본 적이 없는, 백 년 전 삶으로 하나하나를 다 살아낸 우리 선진의 세밀한 이야기가 이 책에 가득하다.
무엇보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천안지역 만세운동에 얽힌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 공개되면서 그 만세운동이 단순한 지방 시위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독립정신’을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고, 또 그 도화선이 미주를 거쳐 다시 국내로 역류시킨 위대한 정신사의 샘물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또한 이 민족운동의 주체가 그 시대 개화를 먼저 이룬 개신교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그 중심선상에 한국인 1세대 목회자 죽사 안창호 목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의미가 크다.
20세기 초(1903년) 경부선은 서울에서 천안 구간 부분개통이 먼저 완공되었다. 민족의 선각자 윤치호 박사가 천안 군수로 부임한 것은 경부선 철도의 부분 개통과 지속적인 공사 진행 감독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철도의 개통은 곧 지역의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충남 북부지역에 위치한 천안이 직산군과 목천군을 통합하여 천안군으로 확장된다(1914년). 이 지역 선교가 윤치호에 의해 기도처로 시작된 이후 전도부인과 권서인의 방문, 그리고 직산군, 목천군을 담당했던 신홍식 목사(민족대표)의 순회전도로 천안읍교회는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교회의 부흥이 본격화된 것은 바로 죽사 안창호 목사가 부임하면서부터이다. 1916년 천안 지방이 창립되면서 선교센터 역할을 할 교회가 천안 군내에 필요했는데 이 일에 안창호 목사가 뛰어 들었다.
그는 사직터 위의 땅군이 ‘뱀 집’으로 쓰던 11칸짜리 건물이 포함된 800주보의 땅을 매입했다. 이를 위해 지방교회들과 개인, 그리고 안창호 목사의 헌신적인 연보가 있었고, 예배당과 게스트 하우스, 사택을 마련하고 1916년 6월에 봉헌과 개소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초청된 사람 중 하나인 윤치호 박사는 축사를 통해 “아는 얼굴이 많아서 반갑다”면서 기도처로는 지지부진했던 천안군의 전도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을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이후 지방의 모든 연합집회와 지방회가 이곳에서 치러졌고 안창호 목사와 그의 아내 최배세 사모의 헌신적인 전도활동을 통해 3개월 만에 50명이 넘는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된다. 정말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목사 부부의 헌신은 결국 가정에 치명적인 고난을 불러왔다. 1년 만에 세 아이와 최배세 사모가 세상을 떠나야 하는 슬픈 일이 벌어진다. 천안 선교는 이렇게 아이들과 젊고 가녀린 여인의 순직의 터 위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홀로 된 안창호 목사는 1919년 민족운동에 뛰어든다. 천안과 공주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이다. 그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준비로 많은 지도자들이 모여들고 헌신된 기독교인이 하나 되어 당시 감리교 천안 지방에서만 총 8차례의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목천보통학교, 입장양대학교, 입장광부, 성환장터, 안서리광부, 풍세봉화, 천안읍내장터, 아우내장터에서 벌어진 만세시위는 매우 조직적으로 기획된 거사였다. 이 가운데 천안읍내장터와 아우내장터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은 참가자수가 3천 명이 넘었고 사망자, 부상자, 체포된 자가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시위이다. 그런데 그 기획자가 바로 이 책의 동선을 그려내고 있는 1세대 목회자 죽사 안창호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당시 지역사회의 청년에게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청년이 교회로 나오고 있다”는 선교사의 보고를 통해 그 역량이 확인되었다. 교회가 진정한 애국애족운동의 산실이며 민족운동의 산실임을 인식한 것이다.
이후 100년의 세월을 지켜온 이 교회는 1948년 사직동 첫 교회 자리를 떠나 문화동으로 이전했고, 다시 2008년 천안 남쪽 구룡동으로 이전하여 오늘날의 ‘하늘샘교회’가 되었다. 하늘샘교회는 20년 전부터 천안만세운동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1919년 3월 29일,’ 그 애국애족의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역사는 기록되어야 역사라는 말이 있다. 100년 전에 일어났던 사실들이 후대에 전해지기까지는 누군가 기록을 남겨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편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방대한 자료를 끌어모으신 안형주 선생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의 출판을 위해 편집과 교정, 그리고 디자인으로 수고한 이영진 박사에게 감사하며, 가치 있는 책을 출판해주신 성서와교회연구원 서용원 원장님께도 감사하다.
2018년 2월 20일
천안만세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성수
■ 목차
추천의 글 / vi
축하의 글 / x
- 부| 서문 / 001
- 부| 미감리교의 한국진출 / 009
개항도시 인천으로 / 010
내한 미국 선교사들의 외적 배경 / 012
태평양 우편 증기선박회사 / 013
미국의 상황 / 014
한국의 상황 / 017
인천 내리교회 최봉현(崔鳳鉉)권사 사위로 / 018
개혁파 선구자 탁사(濯斯) 최병헌(崔炳憲) 목사 / 024
탁사 최병헌의 민족 민권운동 / 026
최초의 기독교적 유교인 / 028
우리암선교사를 따라서 공주로사 / 029 - 부| 천안지방 만세운동 / 037
천안으로 모여든 애국계몽운동 목사들 / 038
죽사(竹史) 안창호(安昌鎬) 목사의
천안교회 개척(1915-1919) / 039
안창호 목사의 진천 부흥회와 청년 현성원 / 043
천안지방 주일학교 순회 총무 한석원 목사 / 045
정재관 목사의 입장교회 부임 / 049
현석칠 목사의 공주교회 부임 / 050
유관순과 안례아 / 052
윌슨 대통령의 14개조항 연설과
재미교포 안정수의 귀국 / 054
첫 하와이 이민선 통역 안정수의 미국 본토 행적 / 055
미주 한인통합운동 / 059
민족자결주의 복음과 국내 독립운동 기운의 조성 / 062
3.1만세운동 / 067
권서(勸書)와 천안만세운동 / 069
천안지방 만세운동의 전개와 일본경찰보고 / 072
3.1만세운동과 미국 선교사들 / 077
천안지방만세운동 주모자들의 옥고와 재판 / 086
3.1운동의 의의 / 087
천안 읍내 만세운동 후 / 087
안창호 목사의 하와이선교사 파송 / 090
유교 유산 / 090 - 부| 하와이 한인촌 와히아와 / 095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야 하는 하와이 경제 / 096
포경산업(捕鯨産業) / 097
미국인과 한인의 첫 만남 / 098
하와이 사탕수수 농업과 외국인 노동자 수입 / 101
하와이에 이민을 보내는 구한말 한국사회 / 103
하와이 이민 한인과 한인사회 유래(1903-1926) / 105
초기 화와이 한인사회 / 106
에와(Ewa)친목회 / 109
청파영사(淸派領事) / 111
농장에서 도시로 / 117
미국본토로 이주 / 119
사진과는 틀려요 / 121
사탕수수 노동자의 파업과 오아후 섬으로의 이주 / 124
와히아와 파인애플 농장과 배영의숙 / 126
스코필드군영 세탁업과 와히아와 한인촌 / 128
한인들의 경제 / 133
한인 소비조합 / 138
1926년, 하와이를 지나가는 한국유학생이 본
하와이 동포들 / 140
학생 기숙사와 사진신부의 친척 유학생들 / 142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 / 145
조미구락부의 역할 / 149
소비조합과 실업진흥 / 151
2세 민족운동 후원 / 153
조미구락부의 사양길 / 157
와히아와 한인기독교회 / 158
업처취(Up Church)의 민족대표 박동완(朴東完)목사 / 160 - 부 | 죽사 안창호 목사의 와히아와 민족운동 / 165
와히아와 올리브교회 / 168
올리브교회 교인들 / 169
올리브교회 재조직 / 171
안창호 목사의 목회 / 174
올리브교회 새 건물 / 177
올리브교회 부인구제회 / 184
애국단(愛國團)과 백범(白凡) 김구(金九)
그리고 이봉창 / 186
임시정부 외히아와후원회 / 191
애국단 재조직 / 191
죽사 안창호 목사의 일시 귀국 / 194
와히아와 한인들의 중립 / 196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 / 198
동안구락부(東雁俱樂部) / 199
동안구락부 회원들과 와히아와 변두리 사람들 / 202
목쿠레이아 사탕수수농장에
네 번 일하러 간 안재덕(安載德) / 205
시급 노동자에서 할당 소작인, 자작농으로 / 208
쿠니아(Kunia) 델 몬트(Del Monte)
파인애플 농장 한인들 / 209
쿠니아 파인애플 농장 한인들 / 213
올리브교회 2세 활동 / 214
와히아와 국민회 지방회 조직 / 216
애국단 청년 유진석(兪鎭錫) / 217
배영학교 / 219
국어학교 교과서들 / 223
국어학교 교사들 / 227
국어학교의 쇠퇴 / 229
국어학교의 영향 / 231
죽사 안창호목사의 민족운동 성과 / 232 - 부 | 강영각의 청년대회 / 237
이민 1세와 2세 간의 문화적 갈등 / 238
농촌 2세 교육문제 / 240
클레어몬트 학생양성소출신 강영각 / 242
2세들을 위한 영자신문
‘영 코리안’(The Young Korean) / 245
청소년 동아리 조직자 / 247
강영각의 2세 문제 인식 / 251
농촌 오아후학생연합
(Rural Oahu Student Union) / 252
교민단총회관 점령사건 / 255
강영각의 미국 본토 여행 / 257
청년운동후원회 / 259
조선소년동맹단 / 260
청년대회(Mass Rally) / 262
청년전도대와 청년희락회 / 266
안창호 목사와 강영각 / 269
경제공황과 공립학교 교사들 / 271
지방영자신문 한인사회 홍보기자 / 274
1935년 오아후 섬 국어교사들 / 277
한인기독학원 / 278
1930년 와히아와 한인사회와 청년모임들 / 280
한인 농부들과 국어학교 문제 / 282
조선소년동맹단의 종말 / 285
강영각의 청년대회가 2세에게 끼친 영향 / 289
강영각의 2세 민족운동 성과 / 290 - 부 | 황혜수의 형제클럽 / 295
차미리사와 황혜수 / 296
미국에서 교육 / 300
미감리교 해외 선교 100주년 기념회 / 301
선교 100주년 기념박람회 / 303
한국학생들의 3.1운동진상발표회 / 304
호놀룰루 기독교 여자청년회(YWCA) 한인 서기로 / 306
첫 호놀룰루 한인 사회복지사 / 308
어머니 클럽 / 308
남풍사 / 309
‘고모’ 황혜수 / 310
호놀룰루 한인사회와 연극 / 312
한인 여성 새 일꾼들 / 314
형제클럽 / 315
1934년 ‘단오놀이’와 ‘결혼예비’ / 317
16년 YWCA봉사와 휴양 / 324
학우회(學友會) / 325
YWCA 한국요리경험 / 326
무용단 / 327
발성영화 ‘심청’ / 328
‘고모’ 황혜수의 형제클럽 성과 / 330
이태성(李泰聖)-호놀룰루 YMCA 한인총무 / 332
하와이 한인학생회연보
(Korean Student Annual) / 338
이태성의 2세민족운동결과 / 343
이한식(李漢植)과 하와이 사진신부 친척 유학생들 / 344 - 부 | 한석원(韓錫源)목사와 아동가극 / 351
초기 캘리포니아 한인사회조성과정 / 352
1928년 캘리포니아 한인사회 / 356
1920년대 신흥도시 로스앤젤레스 / 360
주요섭의 ‘국어학교’ 제안 / 361
세계주일학교 대회 / 364
큰샘 한석원 목사 / 368
리들리 해동학교 / 369
아동가극 목적과 내용 / 372
아동가극에 대한 기대 / 375
리들리 아동가극대 공연 / 376
아동가극 ‘우리나라만세’ / 379
아동가극 ‘초로인생’/ 384
아동가극 대성황 / 387
라성국어학교 학예회 / 391
한인아동교육기관 기성 발기위원회 / 392
이승만의 중가주 방문 / 395
광주학생 항일운동과 재미 한인 공동회들/ 398
한석원 목사의 순행전도 / 399
‘세계명작가곡집 무궁화’/ 401
재미일본인 국어학교의 영향 / 403
국어학교 부흥운동 결과 / 405
한석원 목사의 미국유학 / 408
큰샘 한석원 목사의 미주 민족운동 성과 / 409 - 부 | 미주민족운동 성과 / 413
국어학교부흥운동의 종말과 한인학생회보
(Korean Student Bulletin) 역할 / 414
한국 유학생들의 글들 / 414
한인 고학생들 / 419
한인학생회보 2세 특집 / 420
캘리포니아 2세 클럽들의 농구시합 / 427
떠돌이 농장노동자의 딸 앤 김(Ann Kim) / 428
1930년대 로스앤젤레스 한인사회 / 432
재미한족연합위원회 / 436
국방경위대 맹호군 / 437
2세들의 제2차세계대전 참전과 무용담 / 437
태평양전쟁중 주미외교위원부 / 439
중경특파원(重慶特派員) 파유추진(派遺推進) / 442
미주 한인 특무공작 납코(NAPKO) 작전 / 444
1) 미국주류사회에 전문가로 진출한 2세들 / 445
예술가로 진출한 2세들 / 445
작곡가 김을(金乙 Earl Kim) / 445
재즈단서 팻 던(Patricia Dunn) / 446
창작 무용가 룯 김(Ruth Kim 김영옥) / 448
2) 병리학자 문덕소(Henry Moon) / 450
의사가된 청년들 / 451
3) 미국사회에 알려진 2세들 / 452
제2차대전영웅 김영옥대령 / 452
두 번 올림픽 금메달를 탄 세미 리(Sammy Lee) / 452
할리우드 동양인배우 안필립(Phip Ahn) / 452
4) 고시조(古時調)를 영역한
공백순(孔伯順 Inez K. Pai) / 453
5) 초기 미국한인사회를 글로 남긴 2세들 / 453
초기 하와이 한인사회를 글로 남긴
김봉희(Bernnice B. Kim) / 453
부모들의 하와이 이민사정을 서술한 배 마가렛(권정숙) / 454
소설 ‘토담’(Clay Walls) 저자
김난영(Gloria Kim Hahn) / 454
‘조용한 모험’(Quiet Odyssey)의 저자 백매리(Mary Paik Lee) / 455
초기 한인들의 구비역사를 엮은 신성려(Helen Sonia Shinn Sunoo) / 455
‘만세’(Masei!) 저자 현 피터(Peter Hyun) / 456
초기하와이 한인들 사진첩을 편집한 장확실(Roberta W. Chang) / 457
자서전을 쓴 정남영 / 457
와히아와의 첫 의사 위인산 / 458
6) 6.25전쟁후 한국에서 봉사한 2세들 / 459
광복후 20년 한국YWCA연합회 고문으로
봉사한 박 에스더 / 459
이대 사회사업과를 세운 신 매리 / 459
7) 광복운동의 기수 초기이민 1.5세들 / 460
재미한인 대변인 전경무(田耕武 Jacob K. Dunn) / 460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한 유일한(柳一韓 Il-han New) / 463
미주 한인 특무공작 납코(NAPKO) 작전 / 465 - 부 | 맺음말 / 471
미주 한인 사회구조의 특성 / 472
미주 한인교회의 역할 / 473
하와이한인들의 집단행동 / 474
미주 한인 집단행동 / 476
재미일인들의 2세 문제 / 477
기독교적 유교인들의 미주민족운동 / 479
미주 한인들의 미군 종군과 전쟁 현황 / 482
주미 외교위원회의 실패 / 483
이민 1세 민초들의 독립운동 / 486
고국에 돌아와 묻힌 애국계몽 목사들 / 487 - 부록
1. 죽사 안창호목사 자필이력서
2. 최병현 <조선의 농촌문제> 靑年 1921년 9월호.
3. 안신아권사 녹취록
4. 대한제국 유민원장정(綬民院章程)
5. 청파영사(請派領事) 황성신문 1905년6월3일
6. 웰취감독이 일본정부 훈장을 받은 기사
7. 올리브교회 교인 명단(1927-1945)
8. 안재덕 약력과 신상카드(와이알루아농업회사)
9. 쿠니아 파인애플농장에 종사한 한인들
10. 강영각 이력서
11. 한석원목사 이력서
12. 세계명작가곡집 무궁화 목차성 / 030 - 그림부록
1. 개항기 인천 제물포 / 011
2. 내리교회 교인들 1905년/ 019
3. 탁사 최병헌 흉상 / 025
4. 최배세사모와 돌을 맞은 장남 철영 1911년 / 032
5. 안구례 이화고등과 졸업 1911년 / 035
6. 하르빈 현성원목사 영문기사 1933년 / 044
7. 한석원 이력서 1930년 / 046
8. 1904년 인천 내리교회 영화학교 / 049
9. 유관순, 문필례와 안례아 / 052
10. 문필레를 이화학당에 입학시킨 신흥우 1912년 / 053
11. 네브라스카주 웨슬리안대학 안정수 1906년 / 058
12. 미주한국유학생들의 영문잡지 발행발기문 / 064
13. 윌슨 대통령 / 065
14. 정재관목사 1904년경 / 085
15. 포경선 사우스 아메리카호 / 098
16. 사우스 아메리카호 항해 일지 겉장과 워커선장이 기록한 용당포 도착 일기 / 099
17. 사우스 아메리카호 워커선장이 조선인dml 인상을 읊은 시(詩) / 100
18. 대한제국 1902년 하와이 여행장 / 105
19. 청파영사(請派領事)를 대한제국 외부(外部)에 제출한 이동호 1905년경 / 116
20. 윤병구 임명장 1905년 / 116
21. 하와이 군도 지도/ 119
22. 오아후 섬 지도 / 119
23. 스코필드 군영 정문 / 128
24. 첫 간장 생산 실패를 인정한 한인 합자 간장회사 광고 / 136
25. 조미구락부 창립 2주년 기념 / 140
26. 조미구락부 창립 10주년 기념 / 145
27. 오운 / 153
28. 조미구락부서 발행한 악보들 / 154
29. 귀국길에 오른 김매리여사 / 156
30. 1923년 제3회 동아총회(東亞總會)에 한국대표로 선출된 안창호 목사와 박동완 목사 / 160
31. 하와이 한독당 간부들 1937년 / 163
32. 임정수 1907년경 / 168
33. 안창호목사와 올리브교회 교인들-김기순 전도사와 주일학교 아이들 1927년 / 170
34. 안창호목사와 청소년지도자 강영각, 박신애, 주일학교 학생들 1927년 봄 / 173
35. 올리브교회 봉헌식에 참석한 하객들 / 183
36. 올리브교회 주일학교 선생들 1935년경
37. 올리브교회 교인들-박신애와 2녀 영희(Esther), 위인산의사 내외 1939년경 / 189
38. 임시정부 와히아와 후원회
39. 박동완, 임두화, 안창호 목사 1933년경 / 197
40. 백범 김구가 안창호 목사에게 보낸 이순신장군시 대련 / 198
41. 동안구락부 창립 5주년 기념식 겸 입회식 / 200
42. 1918년 일본여권에 붙였던 안재덕사진 / 205
43. 올리브교회 주일학교 학생들 1934년 / 215
44. 올리브교회 주일학교 학생들 1940년 / 216
45. 죠션말교과셔 / 224
46. 초등소학 권일 / 225
47. 와일루아 국어학교 여학생이 그린 한반도 지도 1930년경 / 226
48. 1914년 클레어몬트 군악대 / 243
49. 단뉴바 한인악대 1919년 / 244
50. 클레어몬트 학생양성소 학생들 1914년 / 245
51. 영코리안(한미보) 표지들/ 246
52. 재미한인 4지도자들 / 246
53. 한글판 ‘영코리안’/ 246
54. 신한민보에 실린 한미보광고 1931년/ 247
55. 한미보에 실린 안창호목사 기사 / 247
56. 하와이왕실 군악대 시가행진 / 248
57. 강영각과 호놀룰루 한인감리교 찬양대 / 249
58. 올리브교회에서 농촌 오아후 한인학생연합 첫 모임 1930년 6월 7일 / 254
59. 와히아와 레이레후아 고등학교 농촌학생연합지부 회원들 1930년 / 254
60. 청년음악대 1932년 5월 / 263
61. 올리브교회에서 열린 6교회 웅변, 합창경연대회를 마치고 / 264
62. 청년대회를 준비하러 호놀룰루 YMCA에 모인 각 교회 대표들 / 266
63. 강영각과 최매리 결혼사진 1932년 9월 / 272
64. 초기 하와이 2세들과 안형주 / 273
65. 강영각의 한미인쇄소 광고 / 286
66. 샌프란시스코 한인야유회 1913년경 / 297
67. 1920년초 어머니클럽을 조직한 황혜수 / 309
68. ‘결혼예비’ 사진들 1921, 1927, 1934년 / 316
69. ‘결혼예비’기사 – 호놀룰루 스타불리튼 / 320
70. 호놀룰루 YWCA 임원들 / 328
71. 해당화클럽 무용연습 / 328
72. 영화 ‘심청‘광고 / 330
73. 하와이 한인학생연회 회보(Korean Student Annual) / 339
74. 한인 라디오, 유성기 판매 광고 1930년대 / 349
75. 호놀룰루 이오란이 고등학교에 모인 사진신부 친척 유학생들 1928년 / 349
76. 캘리포니아 한인지역 사회들 / 352
77. 캘리포니아 콩밭 김을 매는 한인들 1915년경 / 353
78. 캘리포니아 한인 콩농장 가옥 1915년경 / 353
79. 캘리포니아 한인들과 백인 안식교인들 1914년 / 354
80. 캘리포니아 한인 벼농장에서 말로 타작하는 광경 1915년경 / 354
81. 캘리포니아 스탁튼 자작 사탕무 농장 한인들 1917년경 / 355
82. 캘리포니아 스탁튼 한인감리교회 교인들 1918년경 / 356
83. 장인환의사가 석방되어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에 모인 한인들 1919년 1월 / 357
84. 로스앤젤레스 한인 잡화상 1930년경 / 360
85. ‘초로인생’ 무대배치도와 동선도 / 375
86. ‘나의사랑’ 악보 / 380
87. ‘맹호약동산해진’ 그림, ‘맹호약동산해진‘ 악보 / 381
88. ‘단심가’ 악보 / 382
99. ‘축복’ 악보 / 383
90. ‘아릅답다 열세집’ 악보 / 383
91. 리들리 아동가극대 1929년 3월 / 384
92. 로스앤젤리스 국어학교 유치반 1930년 / 391
93. 샌프란시스코 국어학교 1920년 / 393
94. 유타주 트레몬톤 국어학교 1915년 / 393
95. 리들리를 방문한 이승만 1929년 11월 / 393
96. 신한민보에 소개된 국어학교 교제들 / 399
97. 단뉴바교회 1930년 3.1절 기념사진 / 400
98. 세계명작 가곡집 ‘무궁화’ / 402
99. ‘우라키‘잡지에 실린 안정수의 한미무역회사 광고 / 420
100. 샌프란시스코 한인 2세 농구팀 1930년경 / 427
101. 앤 김과 그의 글 / 430
102. 국민회가 주최한 2세들 모임 1940년 12월 / 435
103. 재미한족연합회 집행위원장 김호가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보 1941년12월12일 / 437
104. 재미한족연합회에서 발행한 한인 증명증과 표장들 / 437
105. 미국연방정부 법무부가 발행한 김호 중경특파원 출국허가증 1942년 11월 25일 / 443
106. 전경무의 외교위원부 이승만 비판글 국민보 1943년 10월 27일 / 444
107. 미시간주 앤아버에 모인 이승만 지지자들 1944년 1월 / 444
108. 김을 사진들 / 447
109. 팻 던 사진들 / 448
110. 김영옥 창작무용 발표 광고와 뉴욕타임스 기사 1946년 12월 / 449
111. 김영옥 무용 사진들 / 449
112. 문덕소 사진 1973년 / 451
113. 공백순의 고시조 영문 번역집 / 454
114. 권정숙(Margaret K. Pai)의 ‘The Dreams of Two Yi-min’(두 이민의 꿈들) / 455
115. 미국전쟁공채 홍보를 위해 활옷을 입은 김론영(Kim Ronyoung)과 저서 ‘Clay Walls’ / 456
116. Mary Paik Lee의 ‘Quiet Odyssey’ (조용한 모험) 표지 / 456
117. 신성려의 ‘Korean Picture Brides’ (한인사진신부들) / 457
118. 현 피터의 저서 ‘Man Sei’(만세) / 458
119. 장확실(Roberta W. Chang)의 책들 / 458
120. 사진신부출신 지도자 이희경과 여아들 / 460
121. 전경무사진이 실린 올림픽복권 1948년 / 462
122. 미국에 도착한 유일한 1905년 9월 / 463
123. 유일한 자서전 ‘When I Was A Boy in Korea’와 경제 월간지 ’고려경제‘ 1945년 / 464
124. 태평양연구소 모임 1945년 1월 / 465
125. 재미한족연합회 서울사무소에서 1946 / 466
126. 윤봉길의사 생가를 찾은 안창호 목사와 엄항섭 1946년 / 468
127. 백범 김구의 이별 사진 1946년 / 468
128. 집단행동 분석도표 / 477
129. 고향 선산 부모묘 앞에 묻힌 죽사 안창호 목사 묘 / 488
130. 대전 현충원 죽사 안창호 목사 묘 / 489
131. 동작동 국립묘지 박동완 목사 묘 / 489 - 참고문헌 / 492
※ 선 주문 할인(30%) 구입 안내.이 책은 선주문하시는 분에 한해 20,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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